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먼나라 이웃나라/문제점/중국 (문단 편집) == [[중일전쟁]] 관련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에 대한 오해 == *1927년 4월에 [[제1차 국공합작]]이 끝났다고 써있는데 실제로는 7월까지 진행되었다. [[4.12 상하이 쿠데타]] 이후 곧바로 [[국공결렬]]이 일어난 걸로 착각한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하이 쿠데타로 국공합작을 유지하는 [[우한 국민정부]]와 국공합작을 파기한 난징 국민정부로 갈라졌을 뿐이었다. 다만 7월에 종료 선언이 있었다는 각주도 있다. * '중일전쟁 때 국민당은 후방에서 방관했지만 공산당은 앞장서서 싸웠다.'는 사실 그 반대이다. 하지만 이 부분만은 [[이원복]] 교수를 탓하기 힘든 게, 한국 역사학계부터가 [[국방대학교]] 기세찬 교수 이전엔 [[도긴개긴]]으로 '''2000년대 이전 중국공산당의 입장을 충실하게 대변한 선전을 그대로 인용'''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역사 연구가 생업인 학자들이 그 지경이었는데, 아동용 교양만화가에게 대신 책임을 묻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렇다고 [[중일전쟁]]에 대해 한국에서 2000년대 이전까지는 계속 거꾸로 알았다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1989년에 출판된 [[김준엽]] [[고려대학교]] 총장의 <장정> 또는 그의 다른 저서들을 보면 "국부군은 일본군을 상대로 집단군급 이상을 동원한 전투만 22회이고, 공산군은 거의 없었고 해방구 확보에만 몰두한다"며 상세하고 정확한 기술해 놓았다. 김준엽 총장은 일본군에서 탈출하여 국부군 유격대에 잠시 있었을 때 공산당 유격대의 공격을 직접 받으며, 당시 상황을 몸소 겪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즉, 정확한 국내 자료는 있었던 것이다. 이원복이 중공 쪽의 엉터리 자료만 본 것일 뿐. * 하지만 이원복의 만화책은 역사학계의 그 누구보다 대중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으며, '''논문은 둘째치더라도 2010년대 시중에 각종 국민당 및 [[장제스]]의 재평가를 다룬 국내외 서적들이 봇물 터지듯 출판'''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2018 개정판에서도 별다른 수정을 안 했다는 점'''[* 거의 7년 만에 낸 최신 전면 개정판이라는 홍보가 무색할 정도로, [[중일전쟁]] 시기는커녕 비교적 최근인 [[시진핑]]과 관련된 내용조차 수정된 부분이 전무하여 전면 개정이 아니라 '''정면''' (책 표지) 개정으로 보일 정도.]에 대해선 면책하긴 어렵다. 아무튼 [[중일전쟁|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중일전쟁에서 가장 앞장서서 싸운 건 [[중국국민당]]이고 [[중국공산당]]은 [[옌안]]에 틀어박혀 세력만 키웠지만, 중일전쟁 이후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한 이후 국민당의 업적은 대륙에서 과소평가됐다. 나무위키의 전신인 [[리그베다 위키]]에서도 몇 년 전까진 딱 이런 식으로 서술되었다 대대적으로 갈아엎어졌다. * 그렇지만 2000년대 이후 대륙에서도 [[장제스]]와 국민당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장제스는 중국의 근대화와 항일전쟁을 이끌었던 영웅으로 치켜세워졌고[* [[장제스]]를 호평하면 그를 상대로 해서 승리한 [[마오쩌둥]]의 평가도 같이 올라가게 되니 당연한 과정이다. 이는 [[항우]]를 띄워주면 그 항우를 물리친 [[고제(전한)|유방]]이 자연스레 띄워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2010년대 이후 중국에서 나온 [[중일전쟁]] 관련 영화에선 중국군은 공산군이 아닌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들고 국민당 마크를 철모에 붙인 국민혁명군으로 그려진다. 대표적으로 [[난징! 난징!]]과 [[진링의 13소녀]], 그리고 첩혈고성과 [[800(영화)|800]]. 이 영화들에서 처절하게 저항하고 싸우는 중국군은 전부 다 국민당군 복장과 제식을 하고 있다. 역사교육에서도 국정제→검정제로 바뀌면서, 역사교과서에 "중일전쟁의 역할에는 국민당 정권이 컸다"는 것은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다. * 오히려 [[중일전쟁]] 동안 뒤에서 이득만 노리던 건 공산당으로, [[마오쩌둥]]이 공산당의 힘을 '''세력 확장에 7할, 2할에 국민당과의 투쟁, 그리고 나머지 1할만 항일'''에 사용해야 한다고 교시했다([[중일전쟁/오해와 편견]] 참조). 리그베다 위키 시절, 먼나라 이웃나라 및 [[중국공산당]] 측 주장과 동일한 내용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아직도 중일전쟁이나 관동군 항목 등 관련 항목 등을 뒤져보다 보면 <먼나라 이웃나라> 식 기술을 찾아볼 수 있다. 어쨌든 책에서 나오는 [[만주]]에서 [[장쉐량]]의 역할과 [[시안 사건]], 신4군의 [[환남사변]] 등 중일전쟁에 대한 대부분의 내용은 인과관계가 완전히 잘못됐다. * 보수 우익인 작가의 성향과 반대로 [[중일전쟁]] 내내 심각한 공산당 찬양과 [[장제스]]/[[국민혁명군]] 까성량으로 채웠는데, [[중국공산당]] 측 자료만 뒤져보고 책을 집필한 것 같다. <먼나라 이웃나라> 전체에서 지엽적인 부분은 수많은 비판 사항이 지적되는데, 중일전쟁 파트처럼 큰 규모를 완전히 오해한 것은 매우 드물다. "장제스, [[마오쩌둥]] 모두 이 전쟁이 장기전이 될 것으로 내다보면서 모두 '장기전이 중국에게 유리할 것'이라 판단했다"고 하면서, "그 결과는 달랐다"고 기술했다. 국민당의 경우 '[[일본]]과 싸우느라 기진맥진…' 이라는 대사를 하고 공산당은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으로 공산군 세력 불리는 기회!' 라는 대사를 한다. 그런데 국민당은 일본군에 안 맞서고 도망치고 공산당은 열심히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면, 왜 국민당은 기진맥진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먼나라 이웃나라>에선 없다. 다만 서술 순서를 보면 기진맥진해졌기 때문에 소극적이 되었다는 논리인 듯하다. * "[[만주사변]] 당시 [[일본군]]이 만주를 공격하자, [[장제스]]의 지시로 싸우지 않고 도망갔다"는 [[중국공산당]]측의 주장을 충실하게 그려 놓았다.[* [[마오쩌둥]] 등 공산당 간부들의 주장을 아무런 검증없이 에드가 스노우가 언론보도를 한 결과, 오늘 날까지 많은 대중들에게 정설처럼 각인되어있다.] 물론 당시 국민정부의 대일정책이 일본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는 부저항주의에 기반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당시 만주를 다스리고 있던 것은 장제스가 아니라 [[장쉐량]]이다. 둘은 직위상으론 장제스가 위였지만 당시 중국의 상황상 누가 누구에게 명령을 내리는 관계가 아니었으며, 50만 명이라는 엄청난 대병력을 보유하고도 싸우지 않고 도망간 것은 장쉐량 본인의 판단이었다. 즉, 만주는 장쉐량의 땅인데 자기가 싸우고 싶으면 싸우는 거고, [[빤스런]]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지, 수천km 떨어져 [[난징]]에 사는 장제스의 뜻과는 관계가 없다. 오히려 장제스는 장쉐량에게 "일본과 독단적으로 협상하지 말라"고 하였다. 장쉐량은 장제스의 지시를 따르는 관계가 아니다. 만화와는 반대로 장쉐량은 "관동군의 도발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동북군은 무력으로 대항하지 말고 모든 무기를 병기고에 보관한 채 스스로 물러날 것이며 일본군에게 최대한 협조하라."라는 지시를 내리며 무저항을 지시하였고, 이에 환멸을 느낀 장쉐량의 수십만 대군은 일본에 항복하여 이후 친일로 [[변절]]하였다.[* 사실 이전 [[소련]]과의 분쟁 등에서 [[장쉐량]]과 알력이 있던 원로들 휘하 부대를 소모성 총알받이를 내세우는 등의 행위로 상당한 갈등이 있었다. 만주사변 이후 일부 군대는 장쉐량을 따라 내려와 이후 [[시안사건]]을 일으킨다.] * [[중일전쟁]] 말기 공산군과 국민당군이 각자 [[일본군]]에게 자신들에게 항복할 것을 요구하자 일본군은 둘 다 거부하고 최후까지 저항했다는 부분도 있는데, 대부분의 부대는 당시 세력이 더 컸던 국민당군에게 항복하기로 결정하고 공산군과는 교전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옌시산]]과 같은 군벌은 일본군을 포섭해 향후 [[국공내전]]에서 공산군과의 전투에 써먹기도 했다. 일본군 장교였던 ~~친일~~ 국군 창군원로들의 책을 보면, 전쟁이 끝나자마자 부대는 항복하였으며 조선과 일본으로 이동하는 과정이 나온다. 만주에서는 [[관동군]]은 일본인 조선인 안가리고 [[시베리아]]로 끌려 갔지만, 소련군이 보기에 군대 취급도 못 받은 [[만주군]]의 조선인들은 그냥 걸어서 조선으로 돌아가 북한군과 한국군 창군의 주력이 된다. 이는 모든 창군 원로들의 자사전에 동일하게 나오는 내용이며, 결사항전 같은 것은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